영국 산업 혁명 | 세계사에 한 획을 긋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계기와 발달 과정 #Highlight #벌거벗은세계사 Ep.47 최근 답변 29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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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화] 저녁 8:40 tvN 방송
#벌거벗은세계사 #은지원 #규현 #이혜성
#티빙에서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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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 – 나무위키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기의 개량을 시작으로 한 기술 혁명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 수공업에 기초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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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4/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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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산업혁명(産業革命, 영어: Industrial Revolution)은 18세기 중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약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새로운 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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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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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길라잡이41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산업혁명은 ‘혁명’이라는 표현 그대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실로 엄청난 변화 를 불러일으켰다. 산업혁명기인 1780~1860년 동안 영국의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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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gsg.hankyung.com

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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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산업혁명 – 네이버 블로그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시민혁명으로 정치가 안정되고 원료공급지와 상품 판매시장인 광대한 식민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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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0/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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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 우리역사넷

산업 혁명은 1760년대에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일어난 산업 및 사회 경제의 변화를 말하며, 대체로 19세기 중엽에 일단락을 지은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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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ntents.history.go.kr

Date Published: 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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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혁명의 의의와 시사점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먼저 영국 산업혁명의 변화상을 요약하면; ①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공업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② 봉건사회에서의 영주와 농노의 대립적 관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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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6/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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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영국 산업혁명의 특징과 시사점 : 공급망 … – 경기연구원

경제 이슈: 영국 산업혁명의 특징과 시사점 -공급망(Supply Chain) 관점에서- – 성영조 연구위원 (상생경제연구실) □ 맬서스의 덫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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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ri.re.kr

Date Published: 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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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1) – 프레시안

그래서 그들은 국내요인에 의한 자본의 축적, 낮은 이자율, 농업생산성의 증가, 인구의 급증, 산업발전에 유리한 사회경제적·정치적 구조 변화, 교육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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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ressian.com

Date Published: 1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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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영국 산업혁명의 의의와 시사점에 관한 연구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시사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손을 대신하 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공장제 수공업 대신 공장제 기계공업이 이루어짐으로 대 량 생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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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cienceon.kisti.re.kr

Date Published: 10/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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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영국의 산업혁명

그러나 영국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1750년경까지 유럽의 경제발전은 대단히 느리고 부분적이었을 뿐입니다. 생산활동은 중세이래 지속되어 온 구래의 봉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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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aculty.knou.ac.kr

Date Published: 6/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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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한 획을 긋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계기와 발달 과정 #highlight #벌거벗은세계사 E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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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영국 산업 혁명

  • Author: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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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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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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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산업혁명(産業革命, 영어: Industrial Revolution)은 18세기 중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약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manufacturing process)으로의 전환,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 등의 큰 변화를 일컫는다. 섬유산업은 현대의 생산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산업혁명은 후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게 된다.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1844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이후 아널드 토인비가 1884년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에서 이를 보다 구체화하였다.

배경 [ 편집 ]

영국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일찍 혁명(17세기 명예 혁명)을 거치고, 봉건제가 해체되어 정치적인 성숙과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이전보다 자유로운 농민층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농촌에서는 모직물 공업이 많이 발달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풍부한 지하 자원(기계와 동력에 필요한 석탄, 철), 제2차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자본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 내외에서는 면직물의 수요가 급증하자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개량해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산업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 후 면직물 공업이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중에는 기계가 무수히 발명되었다. 이 때부터 기계는 생산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기술 혁명 [ 편집 ]

산업혁명의 시초는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몇 개의 혁신과 연결되어 있다.

증기혁명 – 제임스 와트는 개선된 증기기관을 발명하였다. 이는 곧바로 광산업에 이용되었지만, 기술 개량으로 1780년대부터는 동력기로 대체되었다. 이 기술은 수력발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과거 상황으로부터 능률적인 반자동화 공장의 빠른 발전을 가능케 했다.

제철산업 – 철강 산업에서, 석탄이 숯을 대신하여 철 제련 단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구리, 용광로의 선철보다 훨씬 전에 발견되었다.

핵심적인 혁신인 이 세 가지 발견은 산업혁명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 왔다. 다른 발명들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물의 발견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초기의 발명이 없었다면, 직물 산업의 다축 방적기나 플라잉 셔틀과 코크스를 이용한 선철의 제련과 같은 성과를 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에 발명된 역직기나 트레비식의 고압기관 역시 영국의 산업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증기 기관을 수력발전으로 가동되던 면직 공장과 제철소에 도입함으로써 편리함을 더욱 증가시켰습니다.

사회적 영향 [ 편집 ]

산업혁명은 경제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 구조도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왕족과 귀족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법 개정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부르주아의 활약은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년 남성들이 하나로 모여 선거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게 했다. 이런 일련의 규제가 폐지되면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로 가게 되었다.

공업화로 농촌 인구의 거의 대부분은 도시로 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도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산업혁명 때 도시에서는 석탄이 타는 연기로 공기가 나빠졌고,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심하며, 사람이 북적대는 불결한 도시로 변한 점이다.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도 산업혁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소비와 휴식도 극히 제한 받았다. 또한 어린이 노동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구빈원 이라고도 부르는 고아원에서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 시켰으며 (아동 노동), 1833년 영국 의회조사에 따르면 지각을 했다고 해서 임금을 깎는 일까지 있어서 영국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야간 근무를 금지하는 등의 관련 법이 제정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정부의 탄압과 언론들의 왜곡 보도에도 불구하고, 임금 감축과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노동 운동이 일어났다. 식사는 빵과 감자가 거의 대부분이였으며, 거기에 차와 버터 등이 곁들어지는 정도였다.

산업혁명기에 발생한 사회 문제 중에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의 수명은 귀족 계급보다 훨씬 짧았는데, 이를 비위생적인 전염병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이 일게 하였으며, 공상적 사회주의에 반발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정립에 의해서 논리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 오해 [ 편집 ]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되어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과장된 점이 있다. 유럽 대륙에서조차 그 충격은 1850년까지는 몇몇 지역에 국한돼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친 것은 1875년 이후였다. 유럽 이외 지역의 산업화는 미국을 제외하면 훨씬 늦게 일어났다. 1895년 독일에서조차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농부였으며, 동유럽과 남유럽의 거의 대부분 지역은 실질적으로 산업과 무관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1]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 《아틀라스 세계사》지오프리 파거 엮음, , 2004

[시장경제 길라잡이<41>]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영국은 일찍이 재산권을 보호해 기술혁신 촉진했죠

프랑스는 국가간섭과 높은 세금 탓에 실패했어요”

1780~1860년이라는 기간

기술보다 제도마련이 중요

프랑스에서도 기술이 발전했지만

최승노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email protected]

◆기억해주세요

이렇듯 엄청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요인이 제기되었는데, 그중 기술혁신이 가장 커다란 요인으로 인정되고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종래의 가내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 시스템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노동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늘려 대규모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에서 기술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까닭도 함께 밝혀낼 수 있다.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이라고 하면 과학의 발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18세기 전후의 과학 정책을 비교하면 영국은 과학연구기관에 대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반면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자금을 투입할 만큼 과학 연구를 적극 지원했다. 그런데도 영국에서 기술혁신이 먼저 일어났던 데에는, 과학의 육성과는 별도로 뭔가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사실 산업혁명기의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해 기술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19세기에는 영국에서도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기술공들의 뒤를 좇아 연구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영국의 기술혁신을 선도한 와트나 트레비식, 스티븐슨 등도 처음부터 연구기관에 있었던 과학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거나 기초 교육만 겨우 받은 기계공 출신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기계공이 과학자들보다 앞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현장에서 기술 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그들 자신이 가장 절실히 느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한 체험으로 기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영국에서는 재산권이 보호되었다는 데 있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에서는 사법 체계가 확립됨으로써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산업재산권인 특허권이 보장되면서 기술 혁신이 더욱 촉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의 특허 취득 건수가 18세기 중반 이후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 이런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한편, 기술이 혁신되더라도 생산에 도입돼야 산업이 발전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 투입이 뒷받침돼야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해 각종 세금이 철폐되고, 보호무역이 쇠퇴해 대내외적으로 시장이 확대되었다. 이로써 경제 활동은 더욱 촉진되고 기업들의 경쟁적인 투자가 활발히 이뤄져 기술 혁신이 생산에 도입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생산성을 증대시킨 기업은 이윤을 얻어 저축과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고, 산업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며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영국처럼 재산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도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교육과 산업, 무역 등 당시 프랑스 정부는 사회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고 간섭했다. 또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여 과학연구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지만, 과학자들의 연구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기술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게다가 프랑스에서는 기술자들이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한다거나, 기업이 기술 도입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킨다 하더라도 정부에 내는 세금이 훨씬 많아 이윤을 남기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는 경제 활동에 대한 규제가 심해 기업이 성장할 수도 없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차이가 프랑스가 아닌, 영국을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 이끌었던 이유다.영국뿐 아니라 모든 선진국의 발전은 재산권 제도 확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서 오랫동안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국 역시 재산권 보호가 매우 잘 돼 있는 나라이다.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해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서 제도를 확립해 놓았고, 이는 벤처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재산권 보호는 시장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 요소인 것이다.명예혁명 이후 영국에서는 사법 체계가 확립됨으로써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는 데, 이에 따라 산업재산권인 특 허권이 보장되면서 기술 혁신이 더욱 촉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최승노 <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email protected] >

영국의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시민혁명으로 정치가 안정되고 원료공급지와 상품 판매시장인 광대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로 값싼 노동력과 공업발전에 필요한 석탄과 철이 풍부하였다.

리버풀은 17세기 말까지만 해도 조용한 항구마을 이었으나 18세기에 들어와 노예무역으로 활발하였다. 영국상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인들에게 총포, 화약, 럼주(술) 등을 주고 흑인을 사들였다.

이 흑인들은 노예상선에 ㅅㄹ어 서인도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에 팔렸다. 이들 지역에서는 사탕수수, 담배, 목화 등을 재배하는 대농장들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흥긴노예의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노예무역은 점점 더 커져만갔다.

노예를 판 돈으로 아메리카에서 목화, 설탕, 럼주를 사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이른바 ‘삼각무역’이라고 한다.

즉, 노예를 사기 위해 총포, 화약, 직물, 럼주 등을 주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구입해 아메리카나 서인도제도에 농장에 노예를 팔고 그 돈으로 목화, 설탕, 럼주 등을 구입하는 순환구조를 갖은 것을 ‘삼각무역’이라고 불렀다.

이 삼각무역으로 영국에서 많은 목화가 들어 오는데 이것이 머지않아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지주들이 소농민의 토지를 매수하여 울타리를 쳐서 대농장을 세우고, 토지를 잃은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여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였다.

이를 제2차 인클로져 운동이라고 한다. 이로인해 농촌은 토지를 잏은 농민들의 이농현상이 점점 증대하게 되어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가게 되었다.

도시로 간 농민들은 임금 노동자가 되어 여자들은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탄광이나 제철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생계를 이어갔다.

그 당시 영국의 맨체스터, 버밍엄, 리버풀 드의 도시에는 삼각무역으로 수입된 목화로 인해 면직물 공업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수요에 못 따르고 있었다.

동력과 기계의 발명

영국의 면직물 수요가 증가되어 면직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이 큰 문제가 되었다. 수공업 상태에서 머물러 생산이 제한적 일 수 밖에 없었다.

1764년 하그리브스는 딸 제니가 우연히 쓰러트린 물레의 움직임을 보고 제니 방적기를 만들었다. 제니방적기는 한번에 여러가닥의 면사를 뽑아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 방적기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면사를 만들 수 있으므로 직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방적공들이 그이 집과 기계를 파괴하였다.

방적기의 연구는 계속되어 1769년에 아크라이터가 수력방적기를 1779년 프롬스턴이 제니방적기와 수력방적기를 결합한 ‘뮬방적기’를 개발하였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 출신의 목사인 ‘카트라이트’는 1785년 역직기를 발명하였다. 역직기는 인력이나 수력대신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이용하였다.

기계의 발명으로 철의 생산과 강철을 만들기 위한 제련술이 발달하고 석탄의 수요증대로 광산이 발전하였다. 당시 광부들은 땅 속에서 석탄을 캐냈는데 지하수 처리가 문제였다. 그러다가 1712년 ‘뉴커먼’ 이 피스톤의 왕복운동에 의한 증기기관을 고안하여 석탄산업과 증기기관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뉴거먼이 만든 증기기관은 석탄 소모가 너무 많아 일반공장에서 쓰기는 부적당하였다.

1769년 와트는 마침내 증기기관을 개량하는데 성공하였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견은 갱안의 물을 퍼 올리기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1785년 이후부터는 면직물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이용되어 면직물 생산량을 크게 증대시켰다.

교통과 통신기관의 발달

1807년 풀턴이 증기기관을 장착한 증기선 ‘클러몬트호'(외륜선) 만들어 허드슨강을 성곡적으로 운항하였다. 그 후 선미에 스크루를 달아 속도를 높었다.

1819년 미국의 서배너호가 증기선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 횡단을 성공하였는데 미국 뉴욕을 출항산지 21일만에 영국의 리버풀에 도착하였다.

1814년에 마침내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1825년에는 석탄수송을 위한 증기기관차 로크모션호를 만들었고 마침내 1830년에는 여객열차 로케호를 개통(리버풀에서 맨체스터까지 운행)

철도는 원료와 제품을 대량으로 그리고 빠른 시간내에 수송하여 교통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로부터 영국은 전국 곳곳에 철도를 건설하고 1848년에는 9,000KM가 넘는 철도가 건설되었다.

철도는 영국뿐만 아니라 곧 유럽의 여러나라에도 건설되었다.

증기기관에 이어 화가였던 미국의 모스는 우편보다 더 빨리 전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1837년 전신기와 모스부호를 발견하였다.

1844년 미국의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에 전선을 연결하여 최초의 통신문을 보내는데 성공하였다,

또 1876년에는 미국의 ‘벨’이 조수 왓슨의 협력으로 유선전화를 발명하였고 아탈리아의 ‘마르코니’는 1895년 헤르츠의 전자파를 이용하여 무선 전신기를 고안하여 처음으로 안테나를 사용하여 1마일 거리에 전신을 보냈다.

1897년 도버해협에서 영국 – 프랑스간의 무선통신을 성공하고 1900년도에 영국군함에 장착하고 1901년에 대서양 횡단 통화에 성공하였다.

통신기관의 혁명은 교통기관의 발달과 더불어 시간, 거리를 단축시키고, 산업과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산업혁명의 영향

산업혁명의 과정을 통해 기계의 발명, 교통, 통신의 발달로 산업이 크게 발전하여 큰 공장과 대도시가 형성되었다.

공장에서는 제품의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제 공업이 형성되었고, 분업 형태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자 공장노동자의 수요가 증가되어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또한, 영국은 세계 각지의 원료를 수입하여 국내공자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자본을 소유한 산업 자본가와 임금에 의존하는 임금노동자 계급으로 사회계급이 재편되고 두 계급 사이에 극렬한 대립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자본을 소유한 산업자본가는 사냥을 즐기는 등 지배계층으로 성장한 반면에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위해 공장, 탄광에서 싼임금을 받고 노동을 해야만 했다.

당시 노동자가 가장 힘든 곳은 탄광으로 갱 속의 덥고 습한 공기로 쓰러지고,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이에 노동자들이 뭉쳐서 영국 탄광에서 세계 최초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또한, 산업혁명 초기에는 작업중에 사고를 당하면 본인의 부주의로 간주하고 급료를 깍거나 해고하였다.

더우기 불황이 닥치면 산업 자본가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노동자를 집단으로 해고하여 노동자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개선을 위해 자본가에게 여러가지 요구를 하게 되었다. 1795년 6월 10만명의 노동자가 런던의 세인트 조지 광장에서 모여 집회를 열었으나 정부는 주동자를 체포하였고 1799년에는 노동자의 집회를 법으로 금지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억압해도 노동자의 저항운동은 계속되고 기계 때문에 자신의 가난과 고통이 있다고 여기고 기계를 부수는 1811년에 ‘러다이트’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정부에서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1819년 8월 맨체스터에서 8만명이 모인 노동자 집회를 정부에서 강경하게 탄압하였으나 노동자의 투쟁이 계속되어 마침내 정부는 1824년에 노동결사금지법 철폐와 조합의 설립을 허용하였다.

노동조합의 결성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탄광에서는 광부들이 조직력을 이용하여 자본가에게 여러가지를 요구하게 되고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요구가 계속되어 자본가와의 갈등을 겪었다.

이무렵 자본가의 한 사람인 스코틀랜드에서 방적공장을 하는 사회주의 사상가 오언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의회에 근로조건 을 개선하는 법의 제정을 요구하였다.

1833년 정부는 노동자의보호를 인정하고 공장법을 제정하였다.

공장법은 그후에도 몇 번 개정되어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빈부격차는 좁아지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서서히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과 결부되었다. 1832년 영국에서 선거법이 개정되어 산업 자본가들도 의회에 진출하였는데 노동자들은 여전히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선거법을 부여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보통선거의 실시 등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하는 ‘인민헌장’을 작성하여 노동계급의 선거권 획득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를 ‘차티스트 운동’이라고 한다.

이 운동은 모든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848년 4월에 수만명의 노동자가 시위를 위해 런던의 케닝턴 광자으로 모였지만 정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시위 주동자를 체표하였다.

차티스트 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노동자들이 단독으로 벌인 최초의 정치운동이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영국의 공장제 공업에 의한 제품의 대량생산과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하여 해외 식민지 건설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을때 유럽대륙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영국이 상업혁명을 완수하여 생산력의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는 기계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대륙은 영국의 상품을 사다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기계수출이 허용되어 유럽대륙은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는 19세기 초, 미국, 독일은 19세기 중엽, 러시아, 이탈리아 등에서는 19세기 말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신대륙에서는 미국 혁명이,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영국에서는 보다 조용한, 그러나 매우 중요한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산업 혁명은 1760년대에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일어난 산업 및 사회 경제의 변화를 말하며, 대체로 19세기 중엽에 일단락을 지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후부터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영국에서 먼저 시작된 산업 혁명은 얼마 가지 않아 유럽 각국에, 이어서 전 세계에 파급되었다. 오늘날 후진국의 경우 그것을 ‘공업화’ 라고도 부른다.

그러면, 영국이 앞장을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영국에서는 봉건 제도가 일찌기 무너지고 근대적 상공업의 발달이 순조로왔다. 그 결과 자본이 축적되고, 길드와 같은 산업상의 규제도 느슨하여 새로운 기업이 발전하는 데 유리하였다. 둘째, 18세기 중엽에 영국은 식민지 쟁탈전에 승리하여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게 됨으로써 해외 무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세째, 영국은 석탄과 철 등 필요한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다. 네째, 18세기 후반부터 농업 개량을 위한 엔클로저 운동이 일어남으로써 토지를 잃은 농민이 많이 생겨 노동력이 풍부하였다. 다섯째, 17세기에 두 번의 혁명으로 절대 왕정이 쓰러진 뒤 정치가 안정되었을 뿐 아니라, 섬나라였던 관계로 대륙의 분쟁에 말려들거나 그 피해를 입는 일이 적었다.

영국 산업혁명의 의의와 시사점

본 연구는 영국에서 발생한 1차 산업혁명의 발생 원인과 그 의의를 분석한다. 이를 이용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진행방향과 그 내용이 우리 인류에게 미칠 명암을 제시한다. 먼저 영국 산업혁명의 변화상을 요약하면; ①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공업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② 봉건사회에서의 영주와 농노의 대립적 관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 관계로 변화되었다. ③ 전통적인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변혁되었다. 그러나 영국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좀 더 편안하고 문명화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사고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강력한 의식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공해문제의 발생이라는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여기서 발견되는 뚜렷한 한 가지 현상은 사회가 서로 대립된 두 개의 새로운 계급으로 나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산업혁명은 소수의 자본가 계급과 다수의 노동자 계급으로 이분화 시켰던 것이다. 이 양대 계급간의 갈등은 경제적인 측면에 국한시켜 보면 성장의 혜택을 어떻게 사용하고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종종 등장하는 이 문제는, 19세기 유럽사에 있어서 여타의 정치적・민족적 문제들과 함께 어울려 많은 희생과 혼란의 원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산업혁명의 결과 물질문명의 풍요는 가져왔지만 기계의 노예가 되어간 ‘인간성 쇠락’이란 명제를 얻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명암을 충분히 분석하여 앞으로 다가 올 4차 산업혁명에 승화시켜 부정적인 요소는 가능한 제거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인류문명과 융합하여 인류의 삶에 새로운 활력의 장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즉, 향후 산업혁명의 결과를 “‘기계가 중심이 되지 않도록,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인간 중심의 혁명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라는 것이 결론적으로 얻은 산업혁명의 시사점이다.

This study analyzes the causes and significanc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England. Using this, the current direction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contents of it are presented to our humanity.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England enabled us to live a more comfortable and civilized life. There was also a spirit to protect the rights and interests of workers, On the other hand, it has produced bad results of workers’ miserable life and pollution problems. In this study, the result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brought the prosperity of material civilization, but it got the proposition of ‘humanity decline’ which became the slave of the machine. Therefore, by analyzing the contrast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it is necessary to eliminate the negative factors in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s much as possible and to integrate positive elements with human civilization so that it becomes a new vitality place in human life.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1)

▲ 1850년경 영국의 산업지도. 검은 회색 부분이 노천탄광 지역으로 공업지역이 대체로 이 부분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탄이 지표에서 얕게 묻혀 있다는 것이 산업혁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철광산과 탄광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 뉴커먼의 증기기관(1717).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데 사용한 이 증기기관은 중요한 기술혁신을 보여주나 에너지 효율은 1%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석탄이 많은 탄광지역에서만 사용되었다.

산업혁명이 이렇게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므로 사람들이 그 원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특히 그것이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인에 대해 온갖 주장들이 제기된다.섬나라라서 외침을 받지 않은 영국의 지리적 이점, 석탄이나 철 등 풍부한 부존자원, 기술적 창조성이나 교육 같은 사회제도, 또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정치질서, 풍부한 노동력과 자본 조달의 용이성, 해외무역 등 수없이 많다.물론 이런 여러 요소들이 조금씩은 다 관련이 있겠으나 문제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이 문제에서는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에 어떤 비중을 두느냐가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거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이다. 그는 라는 책을 써서 대중적으로 매우 유명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의 삼촌으로 1884년부터 ‘산업혁명강의’를 시작했다. 그도 19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꽤 유명한 경제사학자였다.그는 산업혁명의 내,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외부적인 요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농업혁명을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과연 산업혁명이 기초가 되었을지는 의심스럽다.반면 해외무역의 급증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1760년에 수출의 1/3을 차지한 식민지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1770년에 맨체스터에서 생산한 공산품의 3/4이 아메리카로 갔다고 말하는 데에서도 새로운 산업이 해외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음을 시사하고 있다.거의 같은 시기의 윌리엄 커닝햄도 산업혁명의 주된 원인은 해외무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발전에 있어 발명과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해외시장의 성장과, 자본을 원활하게 공급한 금융의 발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20세기에 들어온 이후 산업혁명에 관한 최초의 권위 있는 연구자인 뽈 망뚜도 해외무역을 중심에 놓았다. 그는 산업과 무역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며 무역이 없었으면 산업의 주된 변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는 당시의 미국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향은 194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18세기말에 아담 스미스도 무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해외부문의 중요성은 18세기부터 영국인이 계속 인식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1950년대에 들어와 사정이 달라졌다.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이 더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50년대 이후 식민지 해방운동이 본격화되며 제3세계로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학자들이 유럽의 부는 유럽인들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식민지를 착취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사실 경제발전을 일찍 이룬 유럽의 중요한 국가들이 거의 식민지들을 갖고 있었으니 그 개연성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서양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이 식민지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유럽 내부적인 여러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국내요인에 의한 자본의 축적, 낮은 이자율, 농업생산성의 증가, 인구의 급증, 산업발전에 유리한 사회경제적·정치적 구조 변화, 교육과 과학지식의 발전, 기술혁신, 풍부한 지하자원 등의 온갖 요인들을 열거하였다.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수요의 증가이다. 국내의 경제발전이 수요를 팽창시키지 않았다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나는 공급을 해소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도 산업혁명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으므로 농업부문의 변화에 중점이 두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1680-1750년 사이 잉글랜드에서의 농업생산성 증대가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국내 시장을 팽창시킴으로써 산업화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따라서 이들은 농업사를 진보의 관점에서 보았다. 영국 농업은 근대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1912년에 <16세기의 농업문제>라는 유명한 책을 쓴 R.H.토니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그리하여 토지의 보다 집약적인 이용, 농업생산성의 지속적인 증가, 이에 따른 농산물가의 하락, 실질임금의 증가가 대중적인 수요를 확대했고 특히 중산층 소득의 일반적인 증가가 소비재 수요를 확대시켰다고 주장되었다.농업의 중요성을 가장 대중적으로 설파한 사람들은 필리스 딘과 W.A.콜이다. 이들은 1962년의 에서 이런 논의를 일반화했다. 해외무역도 18세기에 국내시장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는 했으나 국내 수요가 결정적이라고 주장하며 논리를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과학과 기술의 자율적인 발전도 내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설명에서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한다. 데이비드 랜디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이들은 기술적 혁신이 산업혁명을 만든 모든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즉 잉글랜드의 산업혁명은 18세기 말의 우연적인 기술발전의 산물로 나타난다. 기술발전으로 생산비용이 절감되며 해외시장을 하나하나 장악하게 되었고 이것은 마침내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외 수출의 확대는 기술혁신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가 된다.

[논문]영국 산업혁명의 의의와 시사점에 관한 연구

초록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시사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손을 대신하

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공장제 수공업 대신 공장제 기계공업이 이루어짐으로 대

량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이는 인류에게 엄청남 부의 축적과 풍요로운 세상을 가

져 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혁명은 오늘날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노동

문제와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교통과 통신 분야의 여러 발명은 농촌과 도시의 벽을 허물고, 문

화의 전파 속도를 빠르게 하였으며 이는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시사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손을 대신하

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공장제 수공업 대신 공장제 기계공업이 이루어짐으로 대

량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이는 인류에게 엄청남 부의 축적과 풍요로운 세상을 가

져 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혁명은 오늘날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노동

문제와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교통과 통신 분야의 여러 발명은 농촌과 도시의 벽을 허물고, 문

화의 전파 속도를 빠르게 하였으며 이는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혁명의 이러한 발명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인류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엄청나게 증대된 생산력은 인간의 물질적인 소비

수준을 증가시켰으며, 나아가 사회·정치적으로도 복잡한 변화를 낳았다. 즉 새로운 일자리나 보다 큰 부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사람의 숫자가 증대

(離村向都)함으로 도시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의 산업혁명의 변화상을 요약하면;

①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공업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즉 사람들은 기존

에 위치해 있던 자신의 경작지 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

되었다.

② 봉건사회에서의 영주와 농노의 대립적 관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

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 관계로 변화되었다.

③ 전통적인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변혁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풍요로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잘사는

사람은 적은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삶

을 살고 있는 등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현상에 의한 빈부격차의 심화

를 두고 한 말이다. 이와 같이 산업 혁명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강대국들의 아

시아 침략과 식민지화, 공해문제의 발생이라는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그러

나 산업 혁명을 통하여 우리는 좀 더 편안하고 문명화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

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사

고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강력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뚜렷한 한 가지 현상은 사회가 서로 대립된 두 개의 새로운 계

급으로 나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업혁명은 소수의 자본가 계급과 다

수의 노동자 계급을 형성시켰던 것이다. 이 양대 계급간의 갈등은 경제적인 측면

에 국한시켜 본다면 성장의 혜택을 어떻게 사용하고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종종

등장하는 이 문제는 19세기 유럽사에 있어서 여타의 정치적·민족적 문제들과 함

께 어울려 많은 희생과 혼란의 원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산업혁명의 결과 물질문명의 풍요는 가져왔지만 기계의 노

예가 되어간 ‘인간성 쇠락’이란 명제를 얻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명암을 충분히

분석하여 앞으로 다가 올 4차 산업혁명에 승화시켜 부정적인 요소는 가능한 제거

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인류문명과 융합하여 인류의 삶에 새로운 활력의 장이 되

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 온 명암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디어 창출자가 더 많은 부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양극화가 발생할 후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의 신기술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는 점점 사라

지게 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계층 간 분화가 심화될 수도 있다.(민병

찬) 또한 지난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적인 대결에서 인공지능이 빠르게 인간

의 영역을 넘어오게 됨을 보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경우 우리 인

간이 설자리를 잃게 되어 인간과 기계의 주객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산업혁명의 결과를 “‘기계가 중심이 되지 않도록,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인간 중심의 혁명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라는 것이 결론적으로 얻은 산업혁명의 시사점이라 하겠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제4차 산업혁명에서도 위와 같은 결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인간이

주인이 되며, 인간 중심의 산업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산업혁명의 산물

인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발명이 인간을 위협한다고 겁내어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외연(外延)을 넓혀 주는 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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