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무장 공비 | [꼬꼬무 38회 요약] 강릉 바다에 나타난 잠수함과 26명의 무장공비! 49일 간 이어진 추격전의 전말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방송) 상위 55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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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22일
평소와 다름없던 표민정(25)씨의 하루는 삐삐 한 통이 울리면서 순식간에 뒤바뀐다.
올봄에 입대한 남동생 표종욱 일병(21)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
사고가 발생한 게 틀림없다 확신한 민정 씨.
그러나 부대 측 주장은 달랐다.
사라진 게 아니라 스스로 탈영을 했다는 데…
도대체 표 일병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족들은 불현듯 한 달 전 ‘그 사건’을 떠올렸다.
때는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강릉.
손님을 태우고 동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택시 기사 이 씨는
갓길 위를 걸어가는 수상한 옷차림의 남자들을 발견한다.
이 씨는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돌아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는데…
바다 쪽에서 울려 퍼지는 음산한 기계음 소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돌고래 형상의 괴물체는
놀랍게도 잠수함이었다!
갑작스러운 괴 잠수함의 출현에 인근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긴급 투입된 UDT 대원들은 목숨을 건 내부 수색을 시작한다.
잠수함을 타고 수십 명의 괴한들이 침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릉 일대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총동원된 장병들이 포위망을 좁혀가며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펼치던 그때!
인근 야산에서 무려 11발의 총성이 한 발 한 발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총상.
심지어, 저항한 흔적조차 없는 11구의 시신!
49일 동안 이어진 피 마르는 추격전의 전말은?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 세 이야기꾼이 전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8회 –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2022.7.28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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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 나무위키

북한의 인민무력성 산하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동해안 일대에 침투하여 정찰 공작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하던 중 해상 복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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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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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浸透事件)은 1996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어급 잠수함이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후 잠수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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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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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것을 택시 기사가 신고를 하면서부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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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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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오늘 얘기해 드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의 암살조를 태운 325톤급 잠수함이 1996년 9월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동해상에서 좌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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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rfa.org

Date Published: 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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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18일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아시나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18일로 26주년을 맞는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 해안에서 북한 잠수함이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인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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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ado.net

Date Published: 10/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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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 북한정보포털

생포자 심문 결과, 침투 공비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제22전대 소속으로 공작요원, … 1998년 7월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 11월 강화도 해안 간첩선 침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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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kinfo.unikorea.go.kr

Date Published: 12/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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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규 칼럼]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현장에서 – 뉴스민

[전병규 칼럼]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현장에서 … 북한군 26명 중 13명 사살, 1명 생포, 11명 자살, 1명 행방불명. 아군은 장병 12명 사망, 27명 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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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min.co.kr

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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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잠수함 발견!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ㅣ뉴튜브 – YTN

[1931년] 중국 땅에 세워진 일본… 만주사변 발생자작극을 벌인 일본단 5일 만에 중국 장악![1996년] 북한 잠수함 발견! 강릉 무장공비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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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tn.co.kr

Date Published: 1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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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11발의 총성, 그 후에 발견된 11구의 시신…강릉 …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 1996년 9월 18일 새벽 0시 강원도 강릉. … 그런데 이광수는 무장공비가 몇 명이 더 있는지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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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sbs.co.kr

Date Published: 12/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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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38회 요약] 강릉 바다에 나타난 잠수함과 26명의 무장공비! 49일 간 이어진 추격전의 전말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방송)
[꼬꼬무 38회 요약] 강릉 바다에 나타난 잠수함과 26명의 무장공비! 49일 간 이어진 추격전의 전말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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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달리 [SBS 교양 공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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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7.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zYQE5Ornhc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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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지도발의 일부 장소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승조원 1명 생포, 24명 사망(15명 사살)

대한민국 18명(군인 12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 민간인 4명) 사망, 27명 부상 교전국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미상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浸透事件)은 1996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어급 잠수함이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후 잠수함에 탑승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에 대한민국 육군은 49일간 소탕 작전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수의 잠수함 승조원들과 대한민국 군인,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승조원 1명이 생포되었다.[1] 육군 28개 부대, 해군 1개 함대, 공군 1개 전투비행단, 수십만의 예비군, 경찰병력이 참여한 이 작전은 평균 일일 전투병력 4만 2천, 연일 전투인원은 150만에 이르는 거대한 작전이였다. 하지만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하였고 부상자는 27명이며 민간 손실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2][3]

김영삼 대통령은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5박6일간의 청남대 연휴를 보냈으며, 국정현안 및 청남대 구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해진다.[4]

참전 부대 [ 편집 ]

배경 [ 편집 ]

생포된 간첩의 증언에 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4년부터 간첩 활동에 잠수함을 투입하였고, 1995년 9월에는 서귀포의 간첩 침투를 지원하기도 했다.[5]

무장공비 요원 중 총책임자인 김동원 대좌의 존재로 인해 이 임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임무임을 알 수 있는데 김동원 대좌는 해상처장이며 그 해상처장이기 이전에 이미 공화국 2중 영웅으로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고위 군관이었다. 참고로 공화국 영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심계층 중에서도 아무나 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직함이며 공화국 영웅 1회 수여 하나만으로도 바로 신분이 전사에서 군관으로 변경될 정도이다. 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이나 수여한 인물이 김동원 대좌다.

이 임무의 진짜 목적은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김영삼을 암살하는 것이다.[6] 이 무장공비들은 1996년 10월 7일에 춘천시에서 전국체전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며 그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상태였는데 그래서 이들 무장공비들은 강릉까지 잠수함으로 침투한 이후 강릉에서 춘천까지 도보로 이동 후 춘천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한 뒤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해서 김영삼 대통령을 저격할 계획이었다. 도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작전 일자보다 3주일 정도 전인 1996년 9월 13일에 원산항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원래 항해요원은 전투요원을 강릉에 상륙시킨 뒤 복귀하는 것으로 임무가 완료되었으나 그들이 탑승한 잠수함이 강릉에서 정박이 아닌 좌초를 당한 탓에 원산항으로 되돌아갈 방법이 아예 없어졌으며 이로 인해 항해요원들도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결국 전투요원들이 항해요원들을 총살시키게 되었다.

1996년 2월 초, 동해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합동 훈련이 실시되었다.[7] 4월 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한 내에서 시행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하면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규정들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수일 간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8][9] 일부에서는 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식량난으로 인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붕괴의 가능성과 흡수통일이 논의되고 있는 것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내의 위기의식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확전의 위험성을 예측하였다.[10]

4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기동훈련을 실시하였고,[11] 5월 17일에는 중부전선에서 무장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군 7명이 비무장지대를 넘었다가 돌아갔다.[12] 5월 23일 새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비정 5척이 서해 북방 한계선을 넘었고,[13] 6월 14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비정 3척이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14]

8월 14일에는 미군과 러시아군이 동해 북쪽 두만강 국경 부근 연안에서 합동으로 상륙과 구조 및 운송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비한 것으로 추측되었다.[1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6년 초부터 미군의 유해 송환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고, 9월 21일에는 미국의 대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16][17]

사건 경위 [ 편집 ]

함정 및 탑승자 [ 편집 ]

상어급 잠수함

보도에 의하면, 상어급 잠수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1986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하였고, 사건 당시 10척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18]

상어급 잠수함은 길이 23.5m, 폭 3.7m에 325톤급으로, 수상 7노트, 수중 12노트로 항해가 가능하다. 승조원은 11명이고, 10명이 추가로 승선할 수 있다. 무장으로는 어뢰 4발과 기뢰가 있다. 선체는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레이다나 음향탐지기로 탐지하기 어려우며, 잠수 및 부상 속도가 빨라 비정규전이나 특수공작에 이용된다.[19]

일부 언론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언급을 인용하여 좌초 당시 남한 영해를 포함한 동해에서는 또 다른 2척의 상어급 잠수함이 활동하며 교신 중이었음이 미국 공군에 포착되었다고 보도되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20]

탑승 인원

대한민국 국방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와 증언에 의하면, 잠수함에 탑승한 인원은 모두 26명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으로, 대좌와 상좌 등 고위급 장교를 포함하며, 소위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21] 그중 19명이 승조원인 것으로 파악되었다.[22]

좌초 및 침투 [ 편집 ]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최초 발견 및 신고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경 택시운전사가 강릉 해안 20m 해상에 좌초된 잠수함을 발견하여 파출소에 신고하였다.[23][24]

내부 조사 및 수색

대한민국 군에서는 2시경에 해안 초소에서 잠수함을 확인하였고, 부대의 전병력이 투입되었다. 3시 40분에는 침투의 흔적을 발견하고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였고, 5시경에는 전군 경계령이 내려졌다. 7시 20분에는 부근 도로에서 권총, 구명조끼 등의 유류품이 발견되었고, 19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동해안 일대의 통행이 금지되었다.[23][24]

4시 55분부터 경비함과 대잠초계기를 동원한 수색이 시작되었다. 7시 25분에 구조 대원이 잠수함 내부로 진입하였으며, 내부에서 AK소총과 실탄, 체코제 기관총이 발견되었다.[23][24] 잠수함은 9월 22일에 동해시로 예인되었다.[25]

국방부 성명

대한민국의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이 사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도발이며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사항이라고 발표하였다.[23]

검거 및 교전 [ 편집 ]

수색과 검거

16시 45분에 동해 고속도로 부근에서 청바지를 입고 권총과 실탄을 소지한 승조원 1명이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격투 끝에 생포되었고, 민간인 복장을 한 11명이 청학산 정상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24][26][27] 달아난 인원은 모두 13명으로 파악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곳곳에서 수색대와 교전을 벌였다.[28] 19일에는 동원된 4만여 명의 군·경찰·예비군과 헬리콥터 5대가 합동 수색을 벌였다.[29]

결과

수색은 9월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49일간 계속되었고, 연인원 200만 명이 투입되었다.[30] 그 결과 잠수함에 탑승했던 26명중 살해된 11명을 발견하였고, 13명은 사살하고, 1명은 생포하였다. 수색대측은 장교를 포함한 11명의 군인, 경찰 1명과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30][31]

상황일지 [ 편집 ]

잠수함이 출발한 이후부터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의 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2][33][34]

침투 [ 편집 ]

잠수함이 발견되기 전의 상황은 생포된 승조원의 증언을 참고하였다.[35]

9월 13일 5시 : 승조원과 전투원 등 28명이 잠수함을 타고 함경남도 원산항 출발

9월 15일 2시 : 강릉 부근 해안에 3명 상륙

9월 17일 22시 : 전투 요원 복귀를 위해 접근 도중 좌초

탐지 및 신고 [ 편집 ]

9월 18일 잠수함을 빠져나온 무장공비는 해안에서 30m 높이의 절벽을 타고 도로로 올라와 곧바로 괘방산으로 도주. 대부분 남쪽으로 향했으며 나머지는 정동천으로 도주 오전 1시 30분 경 :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리 대포동 해변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소형잠수함이 좌초되어 있는 것을 택시기사가 발견하고 인근 강동경찰서에 “바다위에 소형 잠수함이 떠 있고, 그 안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비명이 들린다”고 신고 오전 1시 45분 경 : 신고를 받은 경찰과 택시기사가 해안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인근 해안초소에 잠수함 발견사실 신고 오전 2시 5분 : 해안경계부대가 모든 병력을 잠수함 발견현장에 투입 오전 2시 15분 : 현장지휘관(중대장)과 5분 대기부대 출동 오전 2시 58분 : 현지연대장 “잠수정으로 추정된다”고 상부에 보고 오전 3시 40분 : 간첩 발자국 발견, 현지부대 ‘진돗개 하나’ 발령 오전 4시 49분 : 해군 1함대 작전과장이 미확인물체는 “잠수정”으로 확인됐다고 보고 오전 4시 55분 : 해군 1함대 외곽차단조치 (경비함 5척, P-3CK 대잠초계기 1대)

검거 및 사살 [ 편집 ]

9월 18일 오후 4시 30분 경 : 강동면 청학산 정상에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무장간첩 11명이 권총으로 사망한 시체를 수색대가 발견, 추후 조사결과 동료 무장간첩들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밝혀짐, 처형당한 무장간첩 중에는 공화국 2중영웅이자 해상처장으로 무장공비 서열 1위인 김동원 대좌와 해상부처장이자 무장공비 서열 2위인 김강훈 상좌도 포함됨, 처형 기준은 보직으로 전투원들이 나머지 보직자들을 처형했다. 오후 4시 45분 경 : 강릉시 모전1리 동해고속도로 굴다리 밑 숲속에서 이광수(31)가 인근 농민과 얘기를 나누다가 주민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생포 오전 5시 : 1군 관할지역 전체에 진돗개 하나 발령 오전 5시 10분 : 전군 경계태세 발령, 합참 위기조치반 소집 오전 5시 11분 : 공군 비상전력 대기 오후 7시 경 : 동해안 일대 통행 금지 발령

9월 19일 오전 10시 30분 :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은신중이던 간첩 4명 중 3명 사살 오후 2시 10분 경 : 칠성산 부근에서 3명 사살 오후 4시 10분 경 : 괘일재에서 1명 사살

9월 20일 오후 9시 경 : 강동면 임곡1리 민가에 권총을 든 간첩 1명이 들어와 옥수수등 음식을 빼앗아 달아남 오후 9시 30분 경 : 신석동 섬석교 부근에 무장간첩 2명 출현, 군과 교전 오후 9시 45분 경 : 강릉비행장 부근에서 총격전 발생, 도주

9월 21일 9시 30분 : 강동면 언별리 칠성산 망기봉 일대에서 도주 간첩 2명 발견, 교전 중 특전사 소속 이병희 중사(25)가 간첩의 조준사격으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

9월 22일 6시 15분 : 언별리 칠성산 계곡에서 무장간첩 2명 발견, 교전 후 사살. 교전 중 노도부대 소속 송관종 일병(21), 화랑부대 소속 강정영 상병(21)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사망

9월 23일 오전 6시 30분 : 칠성산 군경합동수색대 간첩소탕작전에서 민간인 1명이 오인 사격으로 사망, 군인 2명 중상[36]

9월 28일 오전 6시 45분 경 : 성산면 어흘리 왕제산 정상부근에서 잠수함 부함장 유림 사살

9월 29일 오후 8시 경 :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에서 을지부대 소속 한대성 병장(21)이 야간매복근무중 근무지를 무단이탈, 오인사격으로 사망

9월 30일 오후 3시 18분 : 왕산면 도마리 칠성산 서쪽에서 무장간첩 리철진 소위 발견, 교전 후 사살

10월 9일 오후 2시 50분 :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활산목 인근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민간인 3명이 피살체로 발견 군은 “M16탄피 4개가 발견됐으나 탄피에는 일련번호가 없다”며 “무장간첩의 잔당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힘

10월 12일 오후 8시 40분 경 : 연곡면에서 매복작전 중이던 철벽부대 중대장 홍동진 대위(26)가 오인사격으로 사망

10월 22일 양구와 인제 일대의 사격장에서 싸리나무 벌목 작업중이던 표종욱 일병(22)이 간첩에 의해 사살, 이후 간첩은 표 일병의 전투복을 빼앗아 입음

11월 4일 오후 3시 경 :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 민통선 북방에서 거동수상자 2명 발견

11월 5일 오전 4시 28분 :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무장간첩 2명과 교전. 교전 중 오영안 대령(49), 강민성 상병 등 4명 전사, 13명 부상. 우황룡 소위는 숙영지로 귀환 도중 무장공비의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후송되어 생존. 그러나 잔여복무기간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고 제대. 오전 10시 30분 : 2명 사살

원인 분석 및 논란 [ 편집 ]

원인 [ 편집 ]

생포된 승조원은 잠수함이 기관 고장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였으나, 대한민국의 군당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무장간첩을 남파한 것으로 보았다.[37]

침투

9월 16일에서 18일까지 동해안 일대에서는 대한민국 해군 함대가 기동 훈련 중이었다.[35]

대한민국의 군당국은 생포된 승조원이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인 점, 표류로 보기에는 해류의 속도가 느린 점을 들어 좌초된 잠수함이 무장간첩을 침투시키고 귀환하려던 중 좌초한 것으로 추측하였고, 남북간 대화 거부를 부각시켜 미국과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간첩을 파견한 것으로 보았다. 일부에서는 남북관계의 경색을 그 원인으로 추측하였다.[3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에 대하여 9월 23일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원산항을 출발한 잠수함이 훈련중 표류하였으며, 강릉 앞바다 해안에서 좌초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하였다.[38]

좌초

생포된 승조원의 진술에 의하면, 잠수함은 강릉 해안에서 300 ~ 400 m 떨어진 연해에서 잠수하던 중 좌초되었다.[39]

인양 작업 중의 보도에 의하면, 스크루에는 해초가 단단히 감겨 있었고,[40] 스크루 커버는 암초에 걸려 있었다.[41]

논란 [ 편집 ]

잠수함의 침투와 한 발 늦은 수색으로 경비 태세의 허점과 신속하지 못한 대응이 지적되었다.[4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장 간첩을 남파한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43]

표종욱 일병은 간첩에게 잡혀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계속 표종욱 일병이 근무 중 이탈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공비를 사살한 이후 공비 중 한 명이 표일병의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표 일병이 공비에게 사살된 것을 인정했다. 실제로도 표일병의 시신은 속옷과 양말만 착용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교수에 의한 질식사였다. 무장공비 최후의 3인 중 한 명이 표일병의 전투복을 빼앗아 입은 뒤 처형했다.

사후 처리 및 여파 [ 편집 ]

3대 재난

강원도 도민들은 4월의 고성 산불, 7월 철원의 홍수 피해와 함께 추석(9월 27일)을 앞두고 일어난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44][45]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관광 수입 감소, 농림어업 손실 등으로 입은 민간인의 피해가 모두 2,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30]

생존자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1965~)는 조사를 받은 뒤 대한민국으로 전향, 1997년 해군에 입대해 2013년 기준으로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46] 조사를 받는 중에 ‘광어회와 쇠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 일화가 있다.[47] 이후 대한민국 여성과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이광수 본인은 딸들이 언론에 노출되길 매우 꺼려하는데 무장공비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시신 송환

1996년 12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례적으로 잠수함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하는 공식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고,[48] 그 다음날인 12월 30일 사망한 24명의 시신이 판문점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송환되었다. 이들 시신은 통상 적군묘지에 안장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송환 요구로 보관하던 중 화장하였다. 생존자에 의해 확인된 유골에는 이름이 붙여졌고, 나머지는 키와 몸무게와 혈액형을 기재하여 식별할 수 있게 하였다. 이날 있었던 시신 송환은 남북한 사이의 첫 시신 송환으로 기록되었다.[49] 추후 사망한 24명의 유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송되었으며 이들은 전원 공화국 영웅으로 추서되었다. 이 중 김동원 대좌의 경우, 이미 공화국 2중 영웅이었기 때문에 급이 더해져 공화국 3중 영웅으로 추서되었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은 공화국 4중 영웅은 김일성과 김정일 뿐이며 공화국 3중 영웅도 이미 사망한 김동원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급이 높아봤자 공화국 2중 영웅에 불과하다.

통일공원

1997년 7월, 국방부는 사고 현장에 공원을 조성하여 좌초된 잠수함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것을 발표하였다.[50]

편제 개편

이후 대한민국 육군은 기존의 소총수만 10명으로 구성된 육군 보병 분대 편제를 소총수 6명, 유탄발사기 사수 2명, 기관총 사수 1명, 기관총 부사수 1명의 편제로 개편했다. 이는 알보병의 화력한계를 이 사건으로 인해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15주년 행사

2011년 9월에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15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육군은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대규모 훈련을 실시하였다.[51]

기타 [ 편집 ]

내무반 총기 난사 사건

수색이 진행되던 9월 22일 강원도 양구군의 한 부대에서 소속 병사가 초소로 이동 중 이탈, 내무반에 총기를 난사하고 민통선 북쪽 방향으로 탈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52] 이 사고로 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다음날 오후 군 병력과 대치하던 탈영병의 자수로 31시간여 만에 사건이 종결되었다.[53]

무장공비 명단 [ 편집 ]

대좌

김동원: 해상처장. 공화국 2중 영웅 신분이며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사후 소장으로 추서되고 공화국 3중 영웅이 됨.

상좌

김강훈: 해상부처장.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남측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5 당을 받드는 길에 인생의 영광이 있다’에 이 당시 무장공비 명단을 발표하고 공화국영웅으로 추서하는 과정에서 확인됨.

중좌

정영구: 함장. 9월 22일 국군에게 사살됨. 수류탄을 맞고 사살된 탓에 시체가 갈기갈기 찢어짐.

만일춘: 기관장.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소좌

신영길: 정치지도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류림: 부함장. 9월 28일 국군에게 사살됨.

대위

리영호: 항해장.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원흥천: 통신장.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박태홍: 부기관장.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김연호: 전투원, 안내원. 9월 21일 국군에게 사살됨.

김승호: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상위

송동철: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한민섭: 전투원.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김창복: 전투원.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리광수: 전투원, 부안내원. 9월 18일 국군에게 생포됨. 이후 국군으로 귀순.

김영일: 전투원. 행방불명

중위

김동현: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량봉선: 전투원. 9월 19일 국군에게 사살됨.

소위

변의정: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리영철: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김철진: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박정관: 승조원. 9월 18일 동료들에게 총살됨.

리철진: 전투원. 9월 30일 국군에게 사살됨.

리광철, 정성훈, 안경섭: 각각 9월 19일에 1명 국군에게 사살됨. 나머지 2명은 11월 5일 국군에게 사살됨. 리광철의 경우 표종욱 일병을 죽이고 그의 전투복을 빼앗아 입음.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참고 문헌 [ 편집 ]

세계일보 1996년 11월 6일자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것을 택시 기사가 신고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잠수함에 탑승한 인원은 총 26명이었으며,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으로서 대좌와 상좌 등 고위급 장교를 포함해 군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조사결과 이 중 19명이 승조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잠수함에 탑승했던 26명 중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한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했다.

1996년 9월18일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아시나요

▲ 사진은 육군 8군단이 1996년 9월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서 발생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을 상기하기 위해 실시한 대침투 훈련 모습. 본사DB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18일로 26주년을 맞는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 해안에서 북한 잠수함이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 장교 7명과 승조원 19명 등 26명이 내륙으로 침투한 사건이다.

18일 오전 1시30분쯤 한적한 시골마을 파출소(강동파출소)에 한 남성에게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택시기사 A씨는 안인진리 해안 20m 해상에서 잠수함을 발견하고 “바다 위에 소형 잠수함이 떠 있고, 그 안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비명이 들린다”고 신고했다.

▲ 사진은 강릉통일공원에 전시된 북한 잠수함(왼쪽) 모습. 오른쪽 해군 퇴역 구축함(전북함)은 철거됐다.본사DB

2시쯤 경찰은 인근 해안초소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군은 모든 병력을 잠수함 발견현장에 투입한다.

3시40분에는 침투 흔적을 발견하고 최대 비상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다.

잠수함은 1986년 자제 개발한 상어급 잠수함으로 길이 23.5m, 폭 3.7m, 325t급이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동해안 일대의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남도발이며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사항”이라고 발표했다.

▲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 해안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함 모습. 본사DB

추석명절을 앞두고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 불안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전시상황을 맞은 동해안의 한적한 어촌마을인 강릉 안인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군은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북한군 1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11명은 자살했고, 1명은 행방불명됐다.

▲ 사진은 강릉통일공원에 전시된 북한 잠수함 모습. 위에 보이는 해군 퇴역 구축함(전북함)은 철거됐다. 본사DB

소탕작전이 49일간 이어지면서 아군측 군인과 예비군, 경찰, 민간인의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끔찍한 사건을 겪은 군인과 주민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북한 잠수함 발견!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ㅣ뉴튜브 – 영상실록, 오늘N [41회]

북한 잠수함 발견!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ㅣ뉴튜브 – 영상실록, 오늘N [41회] 2022년 09월 16일 오후 02시 31분 뉴튜브 YTN2 글자크기 조정하기 글자크기 조정하기 글자 크기 조정창 닫기 매우 작은 크기 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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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11발의 총성, 그 후에 발견된 11구의 시신…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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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드립니다.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선미, 배우 이기우, 방송인 홍석천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때는 1996년 10월 22일 저녁, 표민정(가명) 씨는 친구들과 있다가 집에서 삐삐 연락을 받았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 목소리가 떨려. 엄마가 “종욱이가 없어졌대”라고 말했어. 군대에 간 남동생이 사라졌다는 거야.표종욱 일병, 당시 21세였어. 부대 옆 산에 작업을 나갔다가 혼자 감쪽같이 사라졌대. 군부대에서 바로 조사에 들어갔는데, 사라진 게 아니라 탈영했다는 거야. 관물대에서 여자친구들한테 쓴 편지가 나왔다며, 여자 문제가 복잡한 걸 봐서 탈영한 거 같으니 연락이 오면 자기들한테 보내달래. 가족들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어.그날부터 온 가족이 나서서 실종된 표 일병을 찾아 산을 뒤졌어. 부대에서는 가족의 말을 믿지 않고, “어디 숨길 생각 하지 말고 자수시키라”는 연락이 계속 와. 도대체 표 일병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1996년 9월 18일 새벽 0시 강원도 강릉. 택시기사 이 씨는 손님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고속도로 갓길에 웬 남자 두 명이 있어. 고속도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리가 없잖아. 잘 봤더니, 군복을 입었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택시기사는 손님을 내려드리고, 다시 남자들을 발견한 인근 도로로 돌아갔어. 내려서 살펴보는데.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음산한 기계음 같은 소리가 계속 울려. 중간중간 사람의 비명소리가 섞여 있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어. 바다야. 해변에서 한 20m쯤 떨어진 바다 위에 빨간 불빛이 반짝거려. 그리고 검은 연기도 막 피어오르고 있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시커먼 괴물체 같은 게 물에 떠 있어. 마치 검은 돌고래 같아. 그 괴물체, 직접 보여줄게.잠수함이야. 택시기사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어. 적의 침투가 확실할 때 발령하는 군 최고 경계 및 전투태세야. 북한 잠수함이 내려왔다는 거야. 바로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해군 특수부대 UDT 대원들이 출동했어. 근데 잠수함 안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만약에 들어갔다가 적과 마주치면 어떡해. UDT 대원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어. 바로 그때,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자원하는 사람이 있었어. 유병호 상사였어.”폭파 장치가 있거나 부상 잔류자가 있다면,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자폭할 것이다. 그럼에도 상부에서는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들어가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누군가는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먼저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유 상사와 대원들을 태운 보트가 출발했어. 높은 파도를 뚫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잠수함에 도착했어. 잠수함 위로 올라가 출입문을 열었어. 그때, 탄내가 코를 찔러. 대체 뭘 태운거지? 심호흡을 하고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어.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쳐. 본격적으로 내부 수색을 시작했어. 잠수함 내부는 어두컴컴해. 그리고 너무 조용해.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내부 수색을 끝냈어. 잠수함 내에는 사람이 없었어. 대신 어마어마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 총은 기본이고, 수류탄이 100개도 넘어. 기관총에 대전차 로켓포까지, 완전 중무장한 잠수함이야.침투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관련된 자료들이 모두 소각됐어. 자료를 불태워버리느라 잠수함 내부에서 탄내가 났던 거야. 남은 건 이 쪽지 한 장이었어.”최고사령관 동지, 전투원 동지. 임무 수행길을 떠나는 전투원들이 서면으로나마 전투적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영웅들은 절대로 죽지 않고 꼭 살아서 승리의 보고를 안고 임무가 실행되어 적화통일의 그날을…”일종의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 맹세문 같은 거야.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야. 사라진 무장공비들, 얼른 찾아야지.인근 해안도로에서 공비들의 발자국이 발견됐어. 어림 잡아도 10명이 훨씬 넘는 많은 수의 발자국이 보였어. 발자국들은 산 쪽으로 향하고 있었어. 공비들이 바다에서 내륙으로 침투했다는 뜻이지.이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이 소식은 뉴스로 알려졌고, 전국이 공포에 빠졌어. 바로 인근 부대 군인들이 총동원 되고 예비군도 비상 소집됐어.김남성 중사가 이끄는 수색조도 공비들의 족적을 쫓고 있었어. 산을 수색하려 하는데,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어. 그런데 총성이 좀 특이했어. 무려 11발의 총소리가 한 발 한 발 규칙적이었어. 총성이 난 쪽으로 다가갔는데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났어. 다가갈수록 냄새가 심해져. 바로 그 순간, “으악!” 앞서가던 대원들이 뒤로 나자빠졌어.사복을 입은 남자 11명이 일렬로 누운 채 죽어 있었어.”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처음엔 민간인인 줄 알았다. 머리를 보니까 다 관자놀이를 쏜 거다. 똑 같은 방향으로. 몸을 수색하니까 권총하고 실탄하고 유서 같은 게 나왔다. ‘아 이게 무장공비구나’ 싶었다.” -당시 수색조 김남성 중사죽은 무장공비들이 남긴 유서에는 “김정일 장군님 죄송합니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쳐 떠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어. 북한에서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목숨을 끝으라는 ‘자폭 교육’이란 걸 받는대. 지금으로 보면 ‘가스라이팅’인 거지. 심지어 온 가족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자폭 정신을 강조해.이 11명의 시신에서도 저항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감식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어. 현장에 있던 총에는 탄약흔이 없었어. 이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겠어? 다른 공비들이 자기 동료들을 사살하고 도망갔다는 뜻이야.북에서 공비가 몇 명이나 내려왔는지 남한에선 모르니까 전부 자살한 것처럼 보이도록 해서 도망갈 시간을 벌려고 한 걸까? 이유가 어찌됐던, 살아있는 무장공비가 더 있다는 거야. 다시 추적이 시작됐어.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가 잠수함에서 2km 떨어진 산골 농가에서 접수됐어. 경찰이 바로 출동했지. 경찰이 가보니 젊은 남자 하나가 농장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데, 딱 봐도 수상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경고하면서 다가갔는데, 남자의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가. 남자가 티셔츠를 드는데 권총 자루가 보였어. 당시 현장에 출동한 최우영 경장은 몸이 먼저 나가 남자가 꺼내려는 권총 자루를 쳤어. 총이 바닥에 떨어졌고, 곧바로 경찰들이 달려들어 팔을 꺾어 제압했어.북에서 왔다고 순순히 자백한 그는 잠수함의 조타수로 이름은 이광수였어. 그런데 이광수는 무장공비가 몇 명이 더 있는지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어. 조사관들은 회유책을 쓰기로 했어. 이광수에게 혹시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있으면 갖다주겠다고 달랬어. 그러자 이광수는 말했어. “내레, 광어회가 먹고 싶습니다.”갑자기 광어회? 너무 뜬금없는 메뉴지. 당시 이광수가 왜 광어회를 먹고 싶다고 한지 알아? 거기엔 황당한 이유가 숨어 있었어.”내가 왜 그 말을 했는가 하면, 이 광어가 고급 어종입니다. 뭘 먹고 싶나 말해봐라 해서, 남조선이 못사는 나라 같은데 광어회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그런 말을 했습네다.”남조선에는 광어회 같은 고급 음식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거야. 이광수가 먹을 거를 구하러 산에서 내려왔다가 체포됐는데, 남조선에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을지도 몰랐대. 알았으면 산에서 안 내려왔을 거라고. 이들이 북에서 얼마나 남한에 대해 잘못 교육받고 있는지가 드러난 순간이야.이광수의 눈앞에 광어회를 딱 대령했어. 그러자 이광수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해. 이광수가 밝힌 사건의 내막은 이래. 정찰 임무를 띠고 하루 전날 침투했는데 잠수함이 암초에 걸리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고 해안가에 갇히는 신세가 됐대. 잠수함에 탄 공비는 총 26명이고. 그럼 이제 공비가 몇 명 남은 거지? 사망 11명, 생포 1명이니, 무려 14명이 남아있어. 빨리 잡아야 해.강릉 전 지역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고, 다음 날 새벽부터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어. 즉시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고 했지만, 항복하는 공비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이날 하루에만 공비 7명이 사살됐어. 우리 군인도 한 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어. 이제 남은 공비는 7명이야.9월 20일, 무장공비 침투 3일째야. 23세 권오택 상병과 21세 강정영 상병도 산에서 매복 중이었어. 며칠 뒤가 추석이라서 휴가를 나갈 예정이었는데 이 작전에 투입됐어.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은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고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 불안에 떨었어. 낮에는 온 산을 뒤지며 수색했고 밤에는 참호 안에서 매복했어. 먹을 건 헬기가 공수해주는 주먹밥이 전부였어. 몸이 힘든 것보다도, 공비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어. 밤이 되면 불빛 하나 없는 첩첩 산중에서 낙엽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눈앞에 있는 나무들이 다 공비로 보이더래.9월 21일 오후, 권 상병과 강 상병은 산 정상으로 이동했어. 산 정상은 아래보다 훨씬 힘들어. 9월말 강원도 산속, 얼마나 추웠겠어. 오들오들 떨면서 꼬박 밤을 샜어.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때였어.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어.우리 군인들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리 정해 놓은 ‘암구호’로 서로의 신분을 확인했어. 강 상병은 “비둘기”라고 암구호를 외쳤어. 근데 상대방이 제대로 대답을 못했어. 유심히 쳐다봤는데, 무장공비가 아닌 거 같아. 간첩들은 젊은 사람들이라 교육받았는데, 상대방은 나이가 꽤 있는 어르신이야. 강 상병은 “할아버지 버섯 따러 오셨어요? 여기 입산 금지 구역이에요”라며 안내했어. 바로 그 순간, 강 상병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알고보니 그 남자는 무장공비였고, 그가 쏜 총에 강 상병이 맞은거야.권 상병은 엎드리면서 수류탄을 까서 던졌어. 연기가 자욱하고 사방이 고요해. 확인해보니, 그 공비는 사망했어. 문제는 강 상병이야. 권 상병은 강 상병을 들춰 업고 헬기가 있는 산 정상으로 뛰어 올랐어. “정영아 괜찮아? 정영아 살 수 있어. 병원 갈 거니까 좀만 참아” 계속 말을 걸면서. 그런데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어.같은 시각, 여수에 있는 정영이네 집. 어머니는 아들 휴가 나오면 주려고, 아들이 좋아하는 고들빼기 김치를 만들고 있었어. 그 때 남편이 얼른 TV를 켜보라 했어. 뉴스 속보에 아들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 중이라고 떴어. 부모님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곧장 서울로 올라 갔어. 부상당해도 살아만 있어라,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강 상병은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했어. 이날 강 상병을 포함해서 우리 국군 3명이 목숨을 잃었어.”내 아들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자식을 못 지키고 이렇게 사는가. 그 생각만 하면, 뜬 눈으로 날을 지샐 때가 많다.” -강정영 상병 부모님그 사이 공비 2명을 사살하고 이제 남은 공비는 5명이야.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어. 산에서 나오질 않아. 우리 군은 아주 특별한 작전을 세웠어. 생포된 이광수를 이용하는 거야.”동지들, 산에서 얼마나 고생합니까? 나는 동지들과 함께 침투한 조타수 이광수입니다. 나는 지금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이 방송을 합니다. 동지들, 북으로 돌아간들 동지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처벌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버리지 맙시다. 동지들, 결단을 내립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자수하여 같이 삽시다.” -이광수 육성 방송생포됐던 이광수가 방송을 하며 자수하라고 설득에 나선 거야. 이 방송이 이 산 저 산 울려퍼졌고, 헬기에서는 전단지도 뿌려졌어. 전단지에는 “난 살아 있으며, 동지들도 투항하면 살 수 있다”는 이광수의 메시지를 적었어.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자수한 공비는 한 명도 없었어. 공비 2명이 추가로 발견되긴 했는데 투항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저항했어. 그래서 2명 모두 사살됐어. 이제 남은 공비는 3명이야.어느덧 10월 8일, 무장공비 침투 21일째야. 남은 공비는 아무 소식이 없어. 일부 지역은 입산 금지가 해제되고, 강원도 춘천에서는 전국체전도 열렸어.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은 그때, 강릉에서 70km 떨어진 평창 시골마을 탑동리에 다시 총성이 울렸어.마을 주민 유갑렬 씨가 총소리를 듣자마자 경찰에 신고했어. 산에 올라간 친구가 그때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었거든. 곧바로 수색이 시작됐어. 유갑렬 씨도 군인들을 따라나섰어. 몇 시간을 헤집고 다니다가 앉아서 좀 쉬려고 하는데, 발 밑이 좀 이상해. 낙엽이 쌓여있는 게 부자연스러워. 조심조심 낙엽을 치웠어. 사람이었어. 같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야. 뭐에 맞았는지 머리에 상처가 심했어. 그리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 2명의 시신이 또 발견됐어. 산에 갔다는 유갑렬 씨 친구야. 두 사람 모두 총상이야. 공비들이 강릉을 벗어나 평창까지 온 거야.인근을 수색했지만 공비를 발견하지 못했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더니 11월 4일이 됐어. 28일 만에 공비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번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민간인통제구역, 휴전선 근처야. 공비들의 목적지는 북한이라는 거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거야.우리 군이 총출동했어. 북으로 못 올라가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시 매복에 들어갔어. 다음 날 새벽 4시, 설악산국립공원 인근 연화동 계곡이야.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백두산” 암구호를 외쳤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어둠 속의 남자는 “3대대 선임하사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까 잠깐 나와봐”라고 말했어. 병사 하나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밖으로 나갔어. 나가서 보니 남자 2명이야. 우리 군복을 입긴 입었는데 철모도 안 쓰고, 결정적으로 총이 우리가 쏘는 총이 아니야. “적이다! 사격!” 총격이 벌어지고, 초병 하나가 부상을 당했어. 이 남자들은 급히 도주했어.지원을 바란다는 무전을 받고 현장에 703특공연대 박경상 대대장이 도착했어. 발자국을 발견해 랜턴을 켜고 확인하려는데,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다들 황급히 차 뒤로 숨었어. 박경상 대대장은 파편에 맞아 피를 흘렸어. 같이 왔던 오영안 대령이 현장에서 전사했어. 바로 그때 저 앞쪽에서 병사 하나가 총에 맞고 쓰러졌어. 옆에 있던 서형원 대위가 구하려 뛰쳐나갔어. 하지만 서 대위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그 상태로 날이 밝았어.지원 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사방에서 추격전이 시작됐어. 그렇게 추격 4시간 만에 공비 2명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우리 군도 오영안 준장, 강민성 병장, 서형원 소령, 3명이 전사했어.이 소식은 전국에 보도됐어. 그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사람이 있어. 맨 처음 얘기했던 군에서 사라진 표종욱 일병 기억나? 산에서 작업 중에 실종됐는데 군에선 탈영했다고 했다는 그 군인. 표 일병의 누나는 뉴스를 보다가, 뭔가를 발견했어. 소름이 쫙 돋았어. 누나가 군대 가기 전에 동생한테 사준 손목시계가 죽은 공비들의 물품 중에 섞여 있던 거야.”군대 가기 전에 동생한테 사준 시계가 있었어요. 그게 일반적인 시계와 달라요. 노란색 테두리의 눈에 띄는 시계를 제가 사줬거든요.” -표종욱 일병 누나누나가 선물한 이 노란 시계를 공비들이 갖고 있었어. 그리고 다음 날, 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표 일병이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실종된 장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낙엽에 덮여 있었는데 속옷만 입은 채였대. 공비들이 표 일병을 살해하고 군복과 물건을 뺏어간 거야.그제야 군에서는 탈영으로 몰아서 죄송하다고 표 일병의 가족한테 사과했어.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정말 기가 막힌 일이 그 뒤에 일어나. 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방송이 나오고 그다음 날, 표 일병의 집에 헌병대에서 전화가 왔어. 그리고는 “표 일병 아직도 연락 없냐. 숨겨도 소용없다. 빨리 자수시켜라”고 말했어. 아무리 착오가 있었다 해도, 이 가족에게는 너무 큰 상처였지.이제 남은 공비는 단 한 명. 그런데 마지막 남은 이 공비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 추측컨대, 도주 중에 사망했거나, 아니면 북으로 넘어간 걸로 추정이 돼.그럼, 대체 이들의 임무는 뭐였을까? 대통령이나 정부 요인을 암살하러 왔다는 설이 있지만, 정보 수집 정찰 중 사고로 잠수함이 좌초됐다는 게 유력한 분석이야. 공비들 소지품에서 카메라가 나왔는데 전부 군부대나 시설을 찍은 사진들이었대.당시 공비들이 쓰던 수첩이 발견됐는데, 거기에는 “우리 조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전투를 진행하겠습니다”, “지도원 동지 정말 미안합니다”,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정말 당신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등의 글이 쓰여 있었어. 표 일병의 수첩에는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며 가족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공비들의 수첩에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글들이 남겨져 있어. 세뇌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야.이번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해 북한은 뭐라고 했을까?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땐, 훈련 중의 잠수함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며, 잠수함이랑 승무원들 당장 돌려보내라고, 안 그러면 배로 갚겠다고 협박을 했대. 그러다 사건이 종결된 12월에는 미국이 중재를 해서 공식 사과를 하긴 했어. “막심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평소 사과하고 거리가 먼 북한이기에, 이 정도만 해도 이례적인 일이었대.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이 사과를 받아들이고 무장공비 24명의 유해를 북한으로 넘겨줬어.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조타수 이광수는 본인의 뜻에 따라 한국에 귀순했어.그렇게 강릉 무장공비 사건은 끝인 줄 알았어.14년이 지난 2010년, 북한이 난데없이 영화 한 편을 공개해. 사살된 무장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선전에 이용한 거야.”전투임무 수행 중 뜻밖에 들이닥친 폭풍에 떠밀려 남쪽으로 흘러가 적들의 포위에 들었을 때, 누구도 명령한 사람은 없었건만 전사들 억세게 틀어쥔 자폭의 수류탄.””20여 년 전 온 세상을 놀라게 했던 강릉의 자폭 용사들.””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25명 전사들의 영웅적 의거는 오늘도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북한의 선전 영화 내용 중-49일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총 27명이 부상을 당하고 18명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 갇혀 있어.”매년 10월 작전했던 시기가 오면, 꿈에 나타난다. 총알이 날아온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어. 그다음에 서형원 대위.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고 있더라. 그런 것들이 자고 일어나면 너무 힘들다.” -박경상 대대장”차라리 탈영이었으면 좋겠다. ‘어디 가서 그냥 우리 연락하지 말고 너 잘 살아라’ 그런 생각도 했다. 동생의 빈자리가 너무 크니까.” -표종욱 상병 누나”집에 돌아오면, 우리 아들 사진을 보고 ‘엄마 들어왔다’ 그런다. 살아있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누가 알겠나”, “미칠 거 같다.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너무 떠오른다. 이건 죽어야 잊을 수 있을 거 같다.” -강정영 병장 부모님☞ [참전용사 지원] 목숨을 걸고 오늘의 평화를 일궈낸 소년들의 이야기(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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